중동고와 별밤퀴즈

내가 다닌 개포고등학교는 강남8학군에 있었다.
그래서 주위엔 경기여고, 숙명여고, 중동고같은 유명한 학교들이 참 많았다.
뺑뺑이 돌려 고등학교가 배정되던 그 때, 사실 난 좀 실망했었다.
초등학교랑 중학교를 모두 아파트 단지내에 있던 개원, 개포를 다녔던지라
좀더 멀고 새로운 학교를 가고 싶은 맘이 있었기에…
그래도 그애들이 안 부러운 한 가지 이유를 굳이 댄다면
개포는 남녀공학이었다는거 정도랄까.

난 고등학교 때 그리 공부를 잘하지도 지지리 넘 못하지도 않았다.
그냥 맨 앞에 앉아 있어 선생님이랑 가까이 있는 탓에
수업을 졸지 않고 들었던 정도의 아주 평범한 학생이었다.
내가 공부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던 건 특히 부모님 때문이었다.
다른 것으로는 야단을 맞아도 성적가지고는 뭐라 하신 적이 거의 없으신데다
밤11시만 지나면 피곤하니까 얼른 자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니 그럴 수 밖에.

그런 고등학교 시절 2학년 1학기쯤이었던가.
평소에 하지 않던 야간 자율학습을 시작하는 날이었다.
내 성격에 여기저기 나가서 떠드는 아이들과 어울릴 법도 했는데
그 날은 첫날이라 마음가짐이 남달랐기에 수학 정석을 펴고 일찍부터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복도에 있던 아이들이 교실로 소리를 지르며 뛰어들어 오더니
문을 재빨리 닫고 잠갔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리는 순간 ‘와장창’하는 소리와 함께
복도쪽 유리창이 차례로 깨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소리를 지르고 파편이 튀고 정말 영화같은 한 장면…

그 이후의 상황은 방송에서 오늘 중동고 학생들이 학교에 쇠파이 프를 들고 떼로 몰려와
1층에 있는 2학년 여학생 교실의 창문을 부수는 사고가 있었고,
위험해서 야간자율학습을 하지 않으니
집에 돌아가라는 얘기를 했던 것 정도로 기억한다.
그러니 어쩔수 있나.
그냥 놀란 가슴과 불타는 학구열을 안고 집으로 돌아갈 수 밖에.

기왕 집에 온거 일찍부터 잠옷으로 갈아입고는 책을 폈는데,
집에있던 동생이 느닷없이 무선 전화기를 냅다 건네주었다.
엉겁결에 받았더니 이쁜 목소리의 언니가 말한다.
“별밤 퀴즈 예선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쿠쿵!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학교에선 유리가 깨져 놀래키더니만 이렇게 놀랄 일이 또 내게…
자기가 해보고 싶어서 열심히 전화버튼을 눌러댔던 동생이
막상 전화가 걸리니까 무서워서 무작정 나한테 전화기를 건낸 것이다.
가슴이 콩닥거림에도 불구하고 어리버리 예선을 통과했다.

드디어 10시가 됐다.
항상 별밤이 시작하기 전엔 뉴스를 한다. 우리학교 나올까…
역시 나온다. 개포고등학교에 중동고등학교 학생들이 어쩌구…
이문세가 나한테 의견을 묻지는 않을까?
정말 내 목소리가 라디오에 나오긴 나오는건가?

이문세, 이성미가 내 이름을 불러댄다.
정말 거의 아무 생각도 안 들었던 것같다.-_-;
염소 목소리가 된 티를 안내느라구 무진장 애를 썼었지…
그 목소리를 그들은 예쁘다고 하더이다.ㅋㅋㅋ
무슨 정신으로 문제를 풀었는지 모르지만 난 2승을 했었고,
그 당시에는 무척이나 귀했던 게스 청바지를 상품으로 받았다.

……

먼지 쌓인 카세트 테이프를 정리하다가
그때 그 별밤퀴즈를 녹음했던 테이프를 찾았다.
잔뜩 쫄아있는 목소리에다 쉬운 문제도 시원하게 못맞추는
정말 창피한 내 모습이 담겨있는 그 테이프…

하지만 더할 나위없이 지나치게 평범하기만 했던 내게
중동고와 별밤퀴즈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를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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