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야의 <중국견문록>중에서
18 Oct 2004 No Comments
in 책

그러니 이렇게 늦깎이로 공부하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다.
아니,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객관적인 나이와 상관없이
지금이 가장 적당한 때라는 생각이 든다.
느긋하기도 하다고? 그래서 언제 남들처럼 살아보겠냐고?
나도 한때는 남들보다 늦는 것이 조바심나서 바들바들 떨면서 살았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더 이상 남과 비교하지 않는, 독자적인 삶을 꾸려가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세계 여행 덕분이다.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 파키스탄의 낭가파르바트,
네팔의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오를 때 공통적으로 깨달은 것이 있다.
‘정상까지 오르려면 반드시 자기 속도로 가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느리고 답답하게 보여도 정상으로 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체력 좋은 사람이 뛰어오르는 것을 보고 같이 뛰면 꼭대기까지 절대로 갈 수가 없다.
반대로 어린이나 노약자들의 속도로 가면 반도 못 가서 지치고만다.
억울하지 않은가.
자기 속도로 가기만 하면 되는데,
그렇게 한 발짝 한 발짝 부단히 올라가면 정상에 오를 수 있는데,
쓸데없이 남과 비교하면서 체력과 시간을 낭비하느라 꼭대기에 오르지 못한다면.
물론 사람에게는 객관적이고 일반적인 인생의 속도와 일정표가 있다.
언제까지 공부를 하고, 결혼을 하고, 직장을 가져서 돈을 벌고,
아이들 낳아 키우고, 노후를 어떻게 보내야 한다는.
이것에 딱 맞추어서 인생을 계획하고 진행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게 해야 본인뿐만 아니라 주위 모든 사람들이 편하다는 말에도 일리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보편적인 시간표와 자기 것을 대조하면서
불안해하고 초조해하곤 한다.
나는 벌써 늦은 것이 아닐까.
내 기회는 이미 지나간 것이 아닐까.
그런데 생각해보자.
우리의 인생에서 이 표준 시간표가 정말 그토록 중요한 것일까?
오히려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시간표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요즘 베이징에는 어디를 가나 탐스러운 국화가 한창이다.
제철을 만난 국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저 국화는 묵묵히 때를 기다릴 줄 아는구나.
그리고 자기 차례가 왔을 때 저렇게 아름답게 필 줄 아는구나.
가을에 피는 국화는 첫 봄의 상징으로 사랑받는 개나리를 시샘하지 않는다.
역시 봄에 피는 복숭아꽃이나 벚꽃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한여름 붉은 장미가 필 때, 나는 왜 이렇게 다른 꽃보다 늦게 피나 한탄하지도 않는다.
그저 묵묵히 준비하며 내공을 쌓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가 매미소리 그치고 하늘이 높아지는 가을,
드디어 자기 차례가 돌아온 지금,
국화는 오랫동안 준비해온 그 은은한 향기와 자태를 마음껏 뽐내는 것이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늦깎이라는 말은 없다.
아무도 국화를 보고 늦깎이 꽃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뒤처졌다고 생각되는 것은
우리의 속도와 시간표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기 때문이고,
내공의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아직 우리 차례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철에 피는 꽃을 보라!
개나리는 봄에 피고 국화는 가을에 피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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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내 말씨의 속도만큼이나 느리고 여유있는 나만의 시간표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인생에서의 표준 시간표를 내게 강요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아직 제철이 아니라 피지 못했다고,
내가 피어날 차례를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얘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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