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May 2006
by filmkillerin 책

나는 더이상 내가 누군가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따위의 생각 같은 건,
더구나 사랑이라는 걸로 누군가를 감동시킬 수 있으리라는 생각 같은 건
안하기로 하지 않았나, 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이 순간이 지나고 일분 후 혹은 삼십초 후,
서로를 애틋하게 어루만지던 그 손가락으로
우리는 서로를 가장 치명적으로 상처입힐 수 있는 것이다.
이유는 오직 하나,
사랑하고 있으니까 상처입히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이므로,
무엇이 그에게 가장 상처 입힐 수 있는지 알게 되는 것이고,
그래서 그런 순간에
언제나 더 사랑한 사람이, 더 많이 드러낸 사람이 더 상처입는다.
나는 다시는 그런 끔찍함 속으로
나 자신을 빠져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일이 닥친다면 나는 다시는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몇번 그런 순간들을 지나왔기 때문에 더더욱,
나는 이제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잠자리에 누웠을 때
내 가슴 언저리를 쓰다듬는 그의 손가락을 나는 냉정히 떼어낸다.
하지만 내가 냉정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생에 지불해야 할 수업료를 톡톡히 치르고
나는 이제 어느정도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수 알게 되었다.
더 많이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12 Mar 2005
by filmkillerin 책

우리 사무실에는 한켠엔 부동산, 다른 한켠엔 도서대여점을 한다.
시간이 별로 없어 많이 읽지는 못하지만
매일을 읽고 싶은 책들과 함께 있으니 마음만은 행복하다.
최근 미국에서는 장기간 베스트셀러인데다
작가가 ‘섹스 앤 더 시티’의 스토리 컨설턴트와 책임작가라고 하길래
아까운 시간을 쪼개어 읽었는데, 생각만큼 괜찮은 책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 구절만큼은 너무너무 맘에 들어 적어본다.
누군가 연락을 끊으면 그렇게도 가슴 아픈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오래 전부터 떠나 있었다는 사실을
똑바로 봐야하기 때문일 거다.
그가 연락을 끊기 오래전부터 나한테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깨닫는 게,
어찌보면 더 힘든 대목이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어떻게 하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지 돌이켜 묻지 말자.
소중한 마음과 시간을 그가 왜 그랬는지를 알아내는 데 쏟지도 말고.
그가 한 말을 죄다 되새기면서,
무엇이 진실이었고 무엇이 거짓이었는지 고민하지 말자.
알아야 할 것은 좋은 소식뿐.
그가 가버렸다는 사실 말이다!
할렐루야. 잘 가라, 배불뚝이! 안녕! 굿바이!
18 Oct 2004
by filmkillerin 책

그러니 이렇게 늦깎이로 공부하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다.
아니,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객관적인 나이와 상관없이
지금이 가장 적당한 때라는 생각이 든다.
느긋하기도 하다고? 그래서 언제 남들처럼 살아보겠냐고?
나도 한때는 남들보다 늦는 것이 조바심나서 바들바들 떨면서 살았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더 이상 남과 비교하지 않는, 독자적인 삶을 꾸려가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세계 여행 덕분이다.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 파키스탄의 낭가파르바트,
네팔의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오를 때 공통적으로 깨달은 것이 있다.
‘정상까지 오르려면 반드시 자기 속도로 가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느리고 답답하게 보여도 정상으로 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체력 좋은 사람이 뛰어오르는 것을 보고 같이 뛰면 꼭대기까지 절대로 갈 수가 없다.
반대로 어린이나 노약자들의 속도로 가면 반도 못 가서 지치고만다.
억울하지 않은가.
자기 속도로 가기만 하면 되는데,
그렇게 한 발짝 한 발짝 부단히 올라가면 정상에 오를 수 있는데,
쓸데없이 남과 비교하면서 체력과 시간을 낭비하느라 꼭대기에 오르지 못한다면.
물론 사람에게는 객관적이고 일반적인 인생의 속도와 일정표가 있다.
언제까지 공부를 하고, 결혼을 하고, 직장을 가져서 돈을 벌고,
아이들 낳아 키우고, 노후를 어떻게 보내야 한다는.
이것에 딱 맞추어서 인생을 계획하고 진행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게 해야 본인뿐만 아니라 주위 모든 사람들이 편하다는 말에도 일리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보편적인 시간표와 자기 것을 대조하면서
불안해하고 초조해하곤 한다.
나는 벌써 늦은 것이 아닐까.
내 기회는 이미 지나간 것이 아닐까.
그런데 생각해보자.
우리의 인생에서 이 표준 시간표가 정말 그토록 중요한 것일까?
오히려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시간표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요즘 베이징에는 어디를 가나 탐스러운 국화가 한창이다.
제철을 만난 국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저 국화는 묵묵히 때를 기다릴 줄 아는구나.
그리고 자기 차례가 왔을 때 저렇게 아름답게 필 줄 아는구나.
가을에 피는 국화는 첫 봄의 상징으로 사랑받는 개나리를 시샘하지 않는다.
역시 봄에 피는 복숭아꽃이나 벚꽃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한여름 붉은 장미가 필 때, 나는 왜 이렇게 다른 꽃보다 늦게 피나 한탄하지도 않는다.
그저 묵묵히 준비하며 내공을 쌓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가 매미소리 그치고 하늘이 높아지는 가을,
드디어 자기 차례가 돌아온 지금,
국화는 오랫동안 준비해온 그 은은한 향기와 자태를 마음껏 뽐내는 것이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늦깎이라는 말은 없다.
아무도 국화를 보고 늦깎이 꽃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뒤처졌다고 생각되는 것은
우리의 속도와 시간표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기 때문이고,
내공의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아직 우리 차례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철에 피는 꽃을 보라!
개나리는 봄에 피고 국화는 가을에 피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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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내 말씨의 속도만큼이나 느리고 여유있는 나만의 시간표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인생에서의 표준 시간표를 내게 강요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아직 제철이 아니라 피지 못했다고,
내가 피어날 차례를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얘기하고 싶다.
12 Oct 2004
by filmkillerin 책

8월에 산 한비야의 책 ‘바람의 딸’ 시리즈 4권 중,
마지막편을 오늘에서야 다 읽었다.
곳곳에 고개를 주억거리게 만드는 부분이 많았던 좋은 책이었지만,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내게,
몇 장 남지않은 마지막 부분에서도 힘이 되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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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또래나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은 외국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내가 5년만 젊었어도 공부를 시작하겠어요.”
“언제부터 그 외국어를 배우고 싶으셨는데요?”
“생각은 아주 오래되었지요.”
“그럼 5년 전에는 왜 시작을 못하셨어요?”
“그때야…”
이런 사람들은 드물지 않다.
‘5년만 젊었어도, 10년만 젊었어도’라며
공부를 시작해 볼 엄두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많다.
용기를 내 시작해 보지도 않고 몇십 년 동안
‘5년만 젊었어도’라는 변함없는 레퍼토리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은 아마 꽃다운 나이 20대부터 그 말을 애용했을지도 모른다.
자기가 무슨 일을 못하는 것이
마치 순전히 나이라는 장애물 때문인 것처럼.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바로 ‘이 나이에…’라는 말이다.
앞으로 더 나이들 일밖에 남지 않았으니
바로 ‘이 나이’가 그 사람의 인생으로서는 제일 젊은 나이인데도 말이다.
바로 ‘이 나이’가 자기보다 나이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며
돌아가고 싶은 ‘참 좋은 때’인데도 말이다.
스스로 자신을 ‘이 나이’에라는 올가미로 얽어매지 않는다면
나이로부터 얼마든지 자유로울 수 있다.
언제 어느 때든 용기를 내어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분들에게
들려드리고 싶은 중국 격언이 있다.
‘늦게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 말고, 하다 중단할 것을 두려워하라.’
나도 늘 명심하고 있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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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나도 늘 명심하고 있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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