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Aug 2004
by filmkillerin 책

이 책을 이제서야 읽는다.
아무래도 남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거나 너도나도 본다하면
괜히 더 관심없어지는 삐딱한 내 성격탓에 잡지 않았던 듯.
읽어보니 역시 많은 사람들이 읽고, 공감하고, 많은 내 나이
또래 여성들이 그녀를 동경했던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 것같다.-
그녀처럼 치밀한 계획을 세우진 못했지만,
그녀처럼 내 일에서 이렇다할 성공을 하진 못했지만…
혼자만의 여행을 통해 얻은 것은 다르지 않음을 알았다
혼자만의 여행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
우선은 내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다.
수많은 어려움과 특이한 상황을 겪어내면서
이제는 어떤 일이 닥쳐도 어렵긴 하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단단해졌다.
또 하나는 세상을 판단하는 나의 잣대가 유연해졌다는 점이다.
내가 가진 잣대가 나름대로 이유를 가지고 있듯이 사람들마다
생각과 가치기준이 다를 수 있다는 다양성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나의 가치기준과 판단기준이 이런 과정을 통해서
점점 객관화하고 논리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사람은 참 다르더라. 그런데 사람은 다 똑같더라’ 라는 것이다.
생활과 풍습이 다르고, 인종과 종교는 다르지만
결국 그 옷들을 다 벗어놓으면 남는 건 인간 그 자체인 것이다.
홀로 떠나는 여행.
이것은 내 자신과의 여행이다.
여행이란 결국 무엇을 보러가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서 수많은 나를 만나는 일이니까.
한비야 作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서문 中
지금 내게 있어
고갈된 자신감을 다시 북돋워 줄,
뻑뻑해진 삶의 잣대에 기름칠을 해줄 그 무엇은
아무래도 ‘혼자만의 여행’이 아닐까싶다…..
06 Aug 2004
by filmkillerin 책

<밥벌이의 지겨움>
정말 죽이는 제목 아닌가.
<칼의 노래>로 유명한 김훈씨의 책을 읽는 건 처음이지만
책 몇 페이지를 넘기다 그의 글발에 반해버렸다.
친구 혜연이에게 4월에 받아 놓고는
짧은 글들을 야금야금 아껴가며 아직도 읽고 있다.^^;
(혜연아, 어찌 이리 너에겐 받기만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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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의 지겨움>
아, 밥벌이의 지겨움! 우리는 다들 끌어안고 울고 싶다.
배터리가 다 떨어지면 핸드폰은 꼬르륵 소리를 내면서 죽는다.
핸드폰이 죽는 소리는 가볍고 하찮다.
핸드폰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유언을 남기고 죽는다.
핸드폰이 죽을 때 내는 이 꼬르륵 소리는
대선사들의 오도송(悟道頌)보다도 더 절박하게 삶의 하찮음을 일깨운다.
핸드폰이 꼬르륵 죽어 버리면 나는 이 세계와 단절된다.
거리에서, 핸드폰이 꼬르륵 죽어 버리면, 나는 문득 이제 그만 살고 싶어진다.
내가 이 세상과 단절되는 소리가 이처럼 사소하다니. 꼬르륵……
모든 ‘먹는다’는 동작에는 비애가 있다.
모든 포유류는 어금니로 음식물을 으깨서 먹게 되어 있다.
지하철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서 자장면을 먹는 걸인의 동작과
고급 레스토랑에서 에이프런을 두르고 거위간을 먹는 귀부인의 동작은 같다.
그래서 밥의 질감은 운명과도 같은 정서를 형성한다.
전기밥통 속에서 밥이 익어 가는 그 평화롭고 비린 향기에 나는 한평생 목이 메었다.
이 비애가 가족들을 한 울타리 안으로 불러 모으고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아 밥을 벌게 한다.
밥에는 대책이 없다.
한두 끼를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
이것이 밥이다. 이것이 진저리 나는 밥이라는 것이다.
밥벌이도 힘들지만, 벌어놓은 밥을 넘기기도 그에 못지않게 힘들다.
술이 덜 깬 아침에, 골은 깨어지고 속은 뒤집히는데,
다시 거리로 나아가기 위해 김 나는 밥을 마주하고 있으면 밥의 슬픔은 절정을 이룬다.
이것을 넘겨야 다시 이것을 벌 수가 있는데, 속이 쓰려서 이것을 넘길 수가 없다.
이것을 벌기 위하여 이것을 넘길 수가 없도록 몸을 부려야 한다면
대체 나는 왜 이것을 이토록 필사적으로 벌어야 하는가.
그러니 이것을 어찌하면 좋은가. 대책이 없는 것이다.
모든 밥에는 낚싯바늘이 들어 있다.
밥을 삼킬 때 우리는 낚시 바늘을 함께 삼킨다.
그래서 아가미가 꿰어져서 밥 쪽으로 끌려간다.
저쪽 물가에 낚시대를 들고 앉아서 나를 건져올리는 자는 대체 누구인가.
그 자가 바로 나다.
이러니 빼도 박도 못하고 오도가도 못한다.
밥 쪽으로 끌려가야만 또 다시 밥을 벌 수가 있다.
예수님이 인간의 밥벌이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하늘을 나는 새를 보라.
씨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거늘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먹이시느니라”
라고 하셨다지만, 나는 이 말을 믿지 못한다.
하느님이 새는 맨입에 먹여주실지 몰라도 인간을 맨입에 먹여주시지는 않는다.
봄에, 새잎 돋는 나무를 바라보면서 나는 늘 마음이 아팠다.
나무들은 이파리에 엽록소가 박혀 있어서 씨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으면서
햇빛과 물을 합쳐서 밥을 빚어낸다.
자신의 생명속에서 스스로 밥을 빚어내는 나무는 얼마나 복 받은 존재인가.
사람의 밥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 굴러다닌다.
그래서 내 밥과 너의 밥이 뒤엉켜 있다.
핸드폰이 필요한 것이다.
엽록소가 없기 때문에 핸드폰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다들 핸드폰을 한 개씩 차고 거리로 나아간다.
무슨 헛소리를 하려고 이 글을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밥벌이는 밑도 끝도 없다.
그러니 이 글에는 결론이 없어도 좋을 것이다.
나는 근로를 신성하다고 우겨대면서
자꾸만 사람들을 열심히 일하라고 몰아대는 이 근로감독관들의 세계를 증오한다.
나는 이른바 3D 업종으로부터 스스로 도망쳐서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인간들의 저 현명한 자기방어를 사랑한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근로감독관들아,
제발 인간을 향해서 열심히 일하라고 조져대지 말아 달라.
제발 이제는 좀 쉬라고 말해달라.
이미 곤죽이 되도록 열심히 했다.
나는 밥벌이를 지겨워하는 모든 사람들이 친구가 되고 싶다.
친구들아, 밥벌이에는 아무 대책이 없다.
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이걸 잊지 말고 또다시 각자 핸드폰을 차고 거리로 나가서 꾸역꾸역 밥을 벌자.
무슨 도리 있겠는가. 아무 도리 없다.
김훈 作 <밥벌이의 지겨움> 중 <밥벌이의 지겨움>
07 Jun 2004
by filmkillerin 책

슬프도록 날씨가 좋은 날이면
생각나는 얼굴이 되고 싶다.
볼만한 연극이 나왔다는 말을 들으면
같이가서 보고픈 사람으로,
좋은 음악감상실의 개업화환 앞에서 공중전화를 하여
불러낼 수 있는 그런 이름으로 간직되고 싶다.
늦은 비가 땅을 파고 있는 새벽에도
선뜻 다이얼을 돌릴 수 있는
전화번호의 주인이 되고 싶다.
교양있는 사람이라고,
특별히 무엇을 하는 사람이라고,
나를 아는 이들에게 기억되기보다는
무던하고 포근한 솜이불같은
평범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같이 다니면 창피하지 않을 걸음걸이로,
같이 걸으면 앞서거나 뒤쳐지지 않을 보폭을 갖고
누구에게나 잘 어울릴 수 있는
무난한 색상을 띤 친구이고 싶다.
그래서 그네들의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덮어주고,
종각에서 시청까지 아무말없이 걸어도
심심하거나 부담스럽게 생각되지 않는
포근한 색상을 가진 아이라고 이름지워 불리고 싶다.
때로는 엄지손톱 밑을 파고 들어가
체중을 뚫는 바늘처럼
피같은 땀, 피같은 눈물에 흠씬 나를 적시울 수 있는
날카롭고 곧은 친구 몇 명을 지닌
행복한 욥이 되고 싶다.
아니 단 한 명이라도 좋다.
변해가는 세상에 조금씩 채색되는 스케치북 위에서
쉬지않고 계속 굴러가는 손수레 바퀴를 닮은 삶으로
그려지기 위해 노력하며,
바퀴의 안쪽에서 어떠한 속도에도 움직일 줄 모르는,
결코 부동의 자세로 있는 바퀴의 축을 닮은 믿음하나
가슴에 간직하고서 열심히 살아가는
욥이 되고 싶다.
03 Jun 2004
by filmkillerin 책

한 침대에서 잔다는 것은 섹스만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한 침대에서 밤에 같이 잠이 든다는 것은
그 사람의 코고는 소리…이불을 내젓는 습성…이가는소리…단내나는 입등…
그것을 이해하는 것 이외에도,
그 모습마저 사랑스럽게 볼수 있다는 뜻이다.
화장안한 맨 얼굴을 예쁘게 볼수 있다는 뜻이며
로션 안바른 얼굴을 멋있게 볼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팔베게에 묻혀 눈을 떳을때
아침의 당신의 모습은 볼만 하리라.
눈꼽이 끼고, 머리는 떳으며, 침 흘린 자국이 있을 것이다.
또한 입에서는 단내가 날것이고…
그모습을 바라보며, 보여줄수 있다는 것은
단내나는 입에 키스를 하고
눈꼽을 손으로 떼어주며
떠 있는 까치집의 머리를 손으로 빗겨줄수 있다는 뜻이다.
당신이 함께 그와 또는 그녀와 잔다…
처음에 당신은 그의 팔베게 안에,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자겠지만.
한참 깊은 잠 중에서는 당신들은 등을 돌리고 잘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깊은 잠속에서 당신의 잠 버릇이 여지없이 다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를 갈기도 하고.
눈을 뜨고 자가도 하고.
배를 벅벅 긁거나.
잠꼬대를 한다거나.
잠결에 울수도 있다는 뜻이다.
당신이 함께 잔다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단내나는 입술로 키스를 할수 있으며
옷을 충분히 입지 않았다면…바로 섹스가 가능 할지도 모른다.
섹스만을 하기 위한 잠자리에서와는 다르게
별도의 복잡한 절차와 교태와 암묵적인 합의가 필요 없다는 뜻이다.
그런…
한 침대에서 잔다는 것은…
매일 같이 잘수 있다는 것은,
서로 매일 같이 섹스를 하는 사이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가…
집이 아닌 곳에서, 애인과 섹스를 할 때에는
우리는…일단 그와, 그녀와 어떤 합의가 있어야 한다.
사랑한다고 믿는다고.
아니면 충분히 매력적이다라고…
사람에 따라 다르겟지만, 여하튼 잘 만난 사람이며 사이라는 것을
서로…합의하에 이루어진다.
몇시에 호텔에. 또는 여관에 들어가서 몇시에 나선다는
그런 합의가 있으며
그 곳에 가기 전에 상대방의 귀를 만진다든지,
엉덩이를 만진다든지, 하고 싶어…라고 말을 한다든지 하는
서로의 확실한 약속된 언어적, 비언어적 합의가 있을 것이다.
그곳에 가면… 남자는 계산을 하기 위해 지갑을 열 것이고.
여자는 텔레비젼을 켜며 콘돔을 준비하라고 말을 한다.
둘은…습관에 따라 먼저 목욕탕으로 들어가기도 하며
그냥… 침대에서 일부터 벌릴수도 있다.
그렇게 한바탕의 폭풍이 지나가면…
잠시 누워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기도 하며…
여자는 눈썹이 지워지지 않앗나 화장을 고칠 것이며
남자는 자신이 여자를 만족시켰나 다시 되씹어 볼 것이다.
그런 후 다시 한 번의 폭풍이 있을 것이다.
시간에 쫓긴다거나 정력이 형편 없다면 그렇지 않겟지만.
그런후…
다시 목욕탕에 들어가 씻고.
그곳에 발을 디딜때와 다름없는 모습을 갖추기 위해
여자는 화장을 하고, 머리를 빗으며
남자는 목욕을 하고, 머리를 감을 것이다.
그러면… 섹스 뒤의 느낌은 어떻까.
사랑하는 사이라면, 그런 최면에 걸렸다면, 좋을 것이고.
여자가 집에 늦엇다면… 불안할 것이며.
세벽께라면… 남자는 더 머무르고 싶을 것이다.
가임 기간이라면 둘중 하나는 불안할 것이며,
나머지 하나는 기쁠 지도 모른다.
불행하다면 둘 다 불안할 것이겠지만…
그들은
항상 꾸민 모습으로 만나며
눈꼽 낀 얼굴을 볼 수 없으며 단내나는 입술에 키스를 할 수 없다.
남자는 여자의 화장 안한 얼굴이
얼마나 큰 상상력을 요구하는지 알지 못할 것이며
여자는 남자가 얼마나 씻기 싫어하고 게으르다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항상…잘 차려진 모습으로 만나며…
섹스는 … 그들만의 합의된 축제이다.
그러므로,
한 침대에서 잘수 있다는 것은
한 침대에서 섹스를 할 수 있단 것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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