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Nov 2006
by filmkillerin 끄적끄적
작년 이맘때 내겐 개인과외로 한글을 가르치고 있는 3명의 학생이 있었다. 그 중 한 명인 미국친구는 이미 귀국했고, 나머지 2명의 중국인은 남편과 시누이가 되어 버려 이제는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지만 말이다.^^; 때마침 북경시내에 있는 YBM에서 한글 강사를 구한다고해서 면접을 본 적 있다. 나름대로 자신있다고 생각하고 갔는데, 보기 좋게 미역국을 마셨다.
1년이 지난 11월초쯤, 인터넷에서 한글강사를 구한다는 공고를 다시 보게 되었다. 작년 겨울의 쓰라린 경험이 있기에 별 기대없이 이력서를 발송하고는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며칠 전 학원에서 연락이 왔다. 드디어 면접을 보고 모의 강의를 진행했다. 큰 강의실 앞에 서 있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십여명의 중국 사람들 앞에서 중국어로 한글을 설명하려니 여간 긴장되는 것이 아니었다. 목소리는 염소처럼 떨리고, 칠판에 적는 글씨도 삐뚤빼뚤 엉망이다.
그런데 역시 하다보니 점점 자신감이 생겼다. 강의 시간 50분 동안, 간단한 소개와 인사로 시작한 처음 2,3분 동안은 너무 어색하고 떨려 이대로 수업을 계속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한글의 모음’ 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설명을 하는 사이, 나도 모르게 학생들을 웃기기도 하고, 칭찬하기도 하며 자연스럽게 진행해 내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첫 수업을 마칠 수 있었다.
어제 드디어 학원에서 연락이 왔다. 다음주 수요일에 계약을 하자고.^^ 시간당 수당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북경에서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내 일을 찾았다는 흐뭇함에, 앞으로 중국 학생들에게 어떻게 한글을 가르치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느라 밤새 잠을 설쳤다. 내 자신에게 실망하지 않도록 정말 열심히 노력할거다!!!
<사족>
기역,니은부터 시작해서 내게 한글을 배운지 1년이 조금 지난 남편이 잘 하는 한국어는…
- 울엄마 아빠나 내 친구들을 만날 때 자주 쓰는 접대용 멘트
안녕하세요.
괜찮아요.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많이 먹었어요. / 배불러요.
건강조심하세요.
- 제일 잘 부르는 한국노래
결혼 이후, 어디서 커플로 노래를 부를 기회를 대비해 가르쳐준 ‘잘했군 잘했어.’
나 : 영감
남편 : 왜 불러
나 : 뒤뜰에 뛰어놀던 병아리 한 쌍을 보았소
남편 : 보았지
나 : 어쨌소
남편 : …… 먹었지
나 : 잘했군 잘했어 잘했군 잘했군 잘했어 그러게 내 영감이라지.-_-;
- 내가 자주 써서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 말들
뽀뽀, 사랑해요, 좋아해요, 보고 싶어요
정말?
똑똑하고 예쁘고 섹시고(이상하게 섹시에는 ‘하’자를 자꾸 빼먹는다.)…
아부쟁이, 거짓말쟁이, 방구쟁이
나쁜 놈
재수없어
내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친구들이 남편에게 물어본다.
‘한국말 잘 하세요?’
그러면 남편이 씩 웃으며 다른 어떤 말보다도 아주 정확하게 얘기하는 한 마디.
‘선생님이 나빠서…’
어휴, 얄미워-_-;
앞으로 내게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 중에 또 이런 학생이 나오면 안될텐데…^^
31 Oct 2006
by filmkillerin 끄적끄적, 중국생활
지난 27일로 북경에 와서 살게 된지 벌써 2년이 됐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2년 동안 잘 지내는 것 같다가도 느닷없이 외로움으로 기분이 바닥을 칠 때가 있었다.
특히나 멀쩡한 사람도 우울하게 만드는 가을바람이 불어올 때면, 움츠린 어깨만큼이나 마음도 활짝 열리질 않는다.
계절탓일까… 참 우울하다.
어느 수준이상으로 더 늘 생각을 않는 중국어 때문에 우울하고,
끝도 없이 익숙해지려 노력해야하는 낯선 환경때문에 우울하고,
이전만큼 자유스러울 수 없는 결혼생활때문에 우울하고,
보고싶은 가족들과 친구들을 맘대로 볼 수 없어서 우울하다…
내 키만한 이민가방을 끌고 의욕과 설레임으로 가슴이 두근대던 2년전 그때…
그때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
18 Oct 2006
by filmkillerin 끄적끄적, 추천
언젠가부터 북적거리는 번화가를 걷다가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듣게 된 익숙한 이 질문.
좀 지나고 나서는 시작하는 멘트도 아주 가지각색.
“인상이 참 좋아요. 덕을 많이 쌓으신 것같네요.”
“조상님들의 보살핌을 받고 계시네요. 그분들께 감사드려야 더 잘 사실텐데…”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이 모두 인연이니 시간 좀 내서 같이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급기야는 한 사람으로는 웬만해서 안 넘어온다 싶었는지 두세사람이 한꺼번에 따라붙는다.
나도 처음에는 아주 착하게, 거절하지 않고 그들의 말에 경청했었다.
그리고 그 ‘도’라는 것에 내가 관심이 없다는걸 알게 된 후로는 정중하게, 예의바르게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친구만나러 강남역에 가도 붙잡히고, 회사에서 퇴근하며 종각거리를 걷다가도 당하다보니 맘 깊은 곳에서 나도 모르게 적개심이 생기기 시작하고 나름대로의 대처방안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첫째, 비교적 완곡한 방법
시간 좀 내달라는 말에 시간없다고, 지금은 바쁘다고 얘기하는 것.
관심있냐고 물으면, 관심없다고 얘기하는 것.
대신 웃으면서 순하게 얘기하면, 그들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반응중 하나 임으로 아주 능숙하게 대처한다.
따라서, 아주 무표정하고 무뚝뚝하게 말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특히나 순해보이는 인상인 경우에는 약간 화내듯 얘기하는 것이 좋다.
둘째, 무서운 눈빛 쏘기
아예 묻는 말에 대꾸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약간 무서운 혹은 무시하는 듯한 눈빛으로 잠깐 위아래로 훑어 본 후, 그냥 가던 길을 계속 간다.
대부분 눈빛의 정도에 따라 반응이 다른데, 좀 심하게 무시했다 싶으면 성공률 100%. 하지만 맘이 좀 찜찜하다.
그들도 우리같은 사람인 것을 이렇게 대해도 되는가싶고…
웬만하면 강도를 약하게 하는 것이 죄책감이 덜 들더라.
셋째, 미리 피하기
이제 몇 번씩 이런 일을 당하다 보면 보기만해도 전방 100m안에 나를 유심히 보는 낯설고 이상한 눈빛이 있으면 그 사람이 ‘도’에 대해 알려주고 싶어하는지 아는지를 바로 판단할 수 있다.
추측에 확신이 들면 아주 바쁜듯 뛰기 시작한다. 아직까지 뛰는 사람을 붙잡으면서까지 ‘도’를 설파하려는 사람을 만난 적은 없다.
넷째, 혼자 다니지 말기
대부분 ‘도’을 알려주고 싶어하는 사람은 외롭고 착해보이는 사람을 찾는 것같다. 지금껏 제의를 받았던 모든 경우가 혼자 길을 걸어가고 있었을 때였다. 친구들과 같이 다니면, 아무래도 이런 말 걸기 어려울거다.
오늘 이글루에서 알게 된 한 친구의 포스팅을 너무 재미있게 읽고 이 글을 쓰게 되었다.
평소 거절에 약한 내 동생도 친구때문에 ‘도’를 체험하러 간 적이 있었는데, 한복을 챙겨 입고 아주 복잡한 방식으로 절도 하고, 돈을 조금냈다고 한다. 돈이 좀 많이 약소했는데 받는 쪽에서 언짢은 기색 내색못하는 것이 역력했다는ㅋㅋ
17 Oct 2006
by filmkillerin 끄적끄적, 중국, 중국생활
어제 북경에서 열린 국제 마라톤에 참가했었다.
프로 선수들과 세계 각국에서 온 마라토너들, 수많은 대학생들과 일반 시민들이 참가했는데,
그 수가 자그마치 2만명을 초과했다고 한다!!!
코스는 4km, 8km, 하프, 풀코스 모두 4종류.
처음 참가하는 주제에 그래도 자존심은 있어서 8km에 도전!
평소에 연습도 별로 못해서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가뿐히 완주했다.V^^V
비록 풀코스의 마라톤은 아니었지만, 워낙에 운동은 힘들지 않을 때까지만 하고 마는 것이 신조였던 내게
어제 마라톤의 완주는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나를 앞질러가는 사람들을 따라 잡아 빨리 뛰고 싶어도, 숨이 차고 견디기 힘들어 다른 사람들처럼 걸어가고 싶어도
처음부터 시작했던 그 속도 그대로, 그 자세 그대로 꾸준히 쉬지 않고 달리면 언젠가는 원하는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다는 쉬운 진리가 어제만큼 뼛속깊이 실감된 적이 없었다.
특히 완주하고 난 후의 성취감과 자신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왜 그렇게 힘든 고생을 사서하는지 이제야 조금은 알 것같다.^^
<굴렁쇠를 굴리며 달리던 80세 할아버지> <한국에서 뱅기타고 날아온 마라톤 동호회 아저씨들>
Previous Older Entries